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문단 편집) ==== 덴마크의 육지 공세와 스웨덴의 바다 반격 ==== 이렇게 외교적으로 스웨덴을 고립시키는 데 성공한 프레데리크 2세는 전쟁의 명분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AD 1563년 5월 보른홀름 섬 근처에 10척의 덴마크 함대와 19척의 스웨덴 함대 간의 전투가 벌어져 스웨덴이 승리했다. 이는 단순한 국지전에 불과했지만 독일의 중재안을 스웨덴이 거절하자 같은 해 8월 13일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2세가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스웨덴과의 본격적인 대결인 '북방 7년 전쟁'을 시작되면서 덴마크가 먼저 스웨덴 남서부의 [[예테보리|앨브스보리]] 요새를 점령하고 할란드까지 진출하며 스웨덴의 서부 항로를 차단하였다. 이로 인해 스웨덴은 그동안 북해로부터 얻고 있던 소금이 차단되었다. 당시까지 군사력을 비교하면 덴마크가 스웨덴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미 스웨덴 육군은 구스타브 1세 바사 시절 루스 차르국과의 전쟁을 통해서 전쟁 수행 능력에 문제가 있음이 증명되었고 이에 그의 뒤를 이은 에리크 14세가 징집된 육군에 대하여 독일식 무기와 군제를 도입하였지만 여전히 덴마크가 고용한 독일 용병보다는 전투 능력이 뒤처졌다. 이 때문에 에리크 14세가 스웨덴 군을 직접 이끌고 할름스타드를 공격했지만 덴마크군에게 격퇴되었다. 또한 에리크 14세가 떠난 뒤에 스웨덴군은 AD 1563년 11월 마레드 전투에서 덴마크군에게 또다시 패배하였다. 바다에서도 잠시 전쟁의 소강 상태 이후 AD 1564년 5월에 벌어진 제1차 욀란드 해전에서 덴마크-뤼베크 동맹함대에게 야코브 바게의 스웨덴 함대가 패배하였지만 스웨덴 제독이 [[스웨덴계 핀란드인|핀란드 출신]]의 클라스 호른으로 교체된 이후 스웨덴 해군은 전황을 역전시키기 시작했다. AD 1564년 8월에 벌어진 제2차 욀란드 해전에서는 스웨덴 함대가 승리를 거뒀고 AD 1565년 5월 뤼겐 전투에서 스웨덴 함대가 승리를 거두며 북유럽 해안을 유린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7월에는 클라스 호른의 스웨덴 함대 49척이 덴마크-뤼베크 동맹함대 36척과 벌인 보른홀름 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발트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그렇지만 육지에서는 여전히 덴마크 육군이 우세함을 보여줬다. 다니엘 란차우가 이끄는 덴마크군이 스웨덴군의 반격을 물리치고 베스테르예틀란드까지 진격하였고 AD 1565년 10월 할란드의 팔켄베르그 근처에서 벌어진 액스토르나 전투에서 다시한번 승리를 거뒀다. 이렇게 하여 바다에서는 스웨덴군의 우위가, 육지에서는 덴마크군의 우위가 이어지는 상태가 유지되면서 전황이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웨덴 내부에서 에리크 14세에 대한 내부 반란이 일어나면서 전쟁을 종식시킬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